**파섹·광년·AU(천문단위)**가 어떻게 탄생·정의되었는지, 역사와 과학적 배경, 최신 표준과 실제 응용까지 알기 쉽게 소개합니다.
목차
서론: “얼마나 먼가?”를 물을 때 생겨난 세 개의 자
밤하늘의 거리를 묻는 일은 고대부터 인류의 집요한 질문이었습니다. 달까지는 손에 잡힐 듯하지만, 금성·태양·별·은하로 갈수록 스케일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며 단일 단위로는 감각이 무뎌집니다. 그래서 천문학은 서로 보완적인 세 개의 단위—태양계 스케일의 AU(astronomical unit, 천문단위), 항성까지의 삼각측량을 바탕으로 한 파섹(parsec), 그리고 물리적 보편성을 지닌 광년(light-year)—를 나란히 쓰며, **거리사다리(distance ladder)**의 각 단에 걸맞은 눈금을 제공해 왔습니다. 이 글은 세 단위가 왜 필요했고 어떻게 다듬어져 오늘의 표준이 되었는지를, 관측사·수학·기술의 관점에서 한 번에 훑어보는 안내서입니다.
본론 1|AU: 태양계의 기준자를 세우다
1.1. 케플러의 조화와 할리의 제안—금성의 통과로 재는 태양까지의 길
케플러의 제3법칙은 태양계의 상대적 크기를 알려줍니다. 하지만 절대길이(미터)로 고정하려면 하나의 정답 눈금이 필요했죠. 17세기 에드먼드 할리는 **금성의 태양면 통과(Transit)**를 지구 곳곳에서 동시에 관측해 **금성·지구의 시차(상대 위치 차)**를 측정하면 태양까지의 거리를 산출할 수 있다고 제안했습니다(1761·1769년 대규모 국제 관측). 이 방식은 지구 반지름을 자로 쓰는 ‘거대한 삼각측량’이었습니다.
1.2. 레이더 시대—AU의 정밀화
20세기 들어 전파공학이 성숙하면서, 1961년 금성 레이더 거리측정이 수행되어 AU 값이 급격히 정밀해집니다. 지구에서 쏜 전파가 금성에서 반사되어 돌아오는 왕복 시간 × 광속으로 절대거리를 잰 것이죠. 이는 AU를 직접 시간-거리로 재는 방법의 문을 열었습니다.
1.3. 2012년, AU는 ‘정확히’ 몇 미터인가
역사적으로 AU는 “지구–태양 평균거리”로 직감적으로 정의되었지만, 태양 질량·행성섭동 등 물리상수와 얽힌 정의는 계산·해석상 모호함을 낳았습니다. 국제천문연맹(IAU)은 2012년 결의 B2로 AU를 정확히 149 597 870 700 m로 SI 미터에 고정했습니다. 이제 AU는 정의상 정확한 길이가 되었고, 행성력이나 태양 질량과 독립적으로 쓰입니다.
본론 2|파섹: 별의 ‘시차 1초’에서 태어난 항성 단위
2.1. 파섹의 아이디어—파라락스 + 초(arcsecond)
**파섹(parsec)**은 “parallax of one arcsecond”의 합성어. **지구 궤도 반지름(=1 AU)**을 밑변으로 삼아,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동안 가까운 별이 **배경별에 대해 1초(1/3600도)**만큼 흔들려 보이는 삼각형의 높이를 거리로 정의합니다. 엄밀히는 1 AU가 1″의 각(초)을 아득히 덮는 거리가 1 pc죠.
2.2. 1838년, 첫 항성시차—61백조성(Bessel·61 Cygni)
프리드리히 베셀은 1838년 61 Cygni의 연주시차를 **0.314″**로 측정해 인류 최초의 항성거리를 결정했습니다. 이 성취는 삼각측량이 실제로 통한다는 것을 입증했고, 이후 파섹 같은 시차 기반 단위의 유용성을 굳혔습니다. 베셀은 독자들이 거리의 **빛 이동 시간(약 10.3년)**을 상상하길 원했지만, ‘광년’이 과학 단위로 쓰이는 데는 시간이 더 필요했습니다.
2.3. 파섹의 ‘정의상 정확성’—IAU 2015
IAU는 2015년 결의에서 파섹 = 648000/π648 000/\pi AU로 정의상 정확한 값임을 명시했습니다(작은각 근사와의 차이는 11자리 이후 수준). AU가 미터에 고정되었으므로, 파섹도 정확한 미터 값을 갖습니다:
1 pc = 648000/π648 000/\pi × 149 597 870 700 m ≈ 3.085 677 581 491 37 × 10¹⁶ m ≈ 3.26156 ly.
본론 3|광년: 물리 상수 ‘c’로 만든 보편 자
3.1. 대중성과 과학성 사이
**광년(light-year)**은 빛이 1년(줄리안년, 365.25일) 동안 진행하는 거리로, c × 1 yr로 정의됩니다. 단위 이름에 ‘년’이 들어가 시간과 거리의 혼용처럼 보이지만, 정의 자체는 거리입니다. 19세기 중엽 유럽 대중천문서에서 본격적으로 자리 잡았고, 오늘날 대중매체와 교육에서 우주 규모를 직관적으로 전하는 언어로 널리 쓰입니다.
3.2. 왜 전문가들은 파섹을 더 선호할까
전문 관측·천체역학에서는 시차 관측—거리 환산이 기본이므로, 파섹이 계산 친화적입니다. 예를 들어 연주시차 pp(arcsec)만 알면 d(pc)=1/pd(\mathrm{pc}) = 1/p가 즉시 나오죠. 반면 광년은 속도 상수 c에 의존하는 환산이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대중 전달·우주 규모의 감각화에서는 광년이 매우 유용합니다.
본론 4|정의의 진화와 최신 계측: 히파르코스에서 가이아까지
4.1. 위성천문학이 바꾼 시차의 정밀도
지상관측은 대기난류의 한계가 컸습니다. 1989년 발사된 Hipparcos는 수천분의 1초각(밀리초각) 정밀도의 시차를 제공하며 근거리 우주의 지도를 새로 그렸고, 2013년 이후의 **ESA 가이아(Gaia)**는 수십 마이크로초각 정밀도로 10억 개 이상의 별 위치·시차를 재정의하고 있습니다. 마이크로초각 정밀도는 비유하자면, 1000 km 떨어진 곳의 머리카락 두께를 가늠하는 수준입니다.
4.2. 표준화의 의미—단위/상수의 분리
AU를 **SI 길이로 고정(2012)**하고, 파섹을 **정의식으로 고정(2015)**한 결정은, 관측·계산에서 상수·모델 의존성을 분리해 해석의 일관성을 크게 높였습니다. 이는 가이아 시대의 밀리·마이크로초각 시차를 안정된 단위 체계에서 해석하도록 만든 기반이기도 합니다.
(정리표) 세 단위의 핵심 비교
단위 | 정의(요지) | SI 환산(대표값) | 주 사용영역 | 장점 | 주의점 |
AU | 정확히 149 597 870 700 m(IAU 2012) | 1 AU = 1.495978707×10¹¹ m | 태양계 규모 | SI에 고정, 행성력·항법 직관 | 과거엔 ‘평균거리’로 혼동 여지 |
파섹(pc) | 648000/π648 000/\pi AU (IAU 2015); 1″ 시차에 해당 거리 | 1 pc ≈ 3.08567758×10¹⁶ m ≈ 3.26156 ly | 항성·은하 근거리 | 시차와 직결, 계산 친화 | 대중에 낯설 수 있음 |
광년(ly) | 빛이 1년 동안 간 거리(c×1 yr) | 1 ly ≈ 9.4607×10¹⁵ m | 대중 전달·감각화 | 직관적 비유에 강함 | 연(時間)과 혼동, 전문 계산엔 비직접 |
참고: IAU 2012·2015 결의, 가이아 자료.
생활·연구 속 응용 예시
- 행성 탐사·항법: 탐사선 궤도 설계·항법 성능 평가는 보통 AU·km가 공존합니다(예: 화성 전이궤도). AU가 SI에 고정되며 동적 모형과 분리된 것도 이 때문입니다.
- 별까지의 거리 알림: 보도자료에서 “프로시마까지 4.24광년”처럼 광년을 주로 쓰되, 논문 본문에서는 1.30 pc처럼 파섹이 우세합니다.
- 우주론 스케일: 수십·수백 **메가파섹(Mpc)**로 은하 집단·거대구조를 표현합니다(허블상수, 바리온음향진동 등). 파섹의 접두어 확장성이 강점이죠.
결론: 셋이 함께 만드는 ‘거리사다리’의 언어
AU는 태양계 내 물리·항법의 실무자, 파섹은 시차·표준촛불을 잇는 과학자, 광년은 우주를 대중과 연결하는 스토리텔러입니다. 세 단위는 경쟁자가 아니라 스케일과 문맥에 맞춰 쓰이는 협력자죠. 18세기 금성 통과에서 21세기 가이아까지, 정의는 더 명확해지고 계측은 더 정밀해졌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먼가?”를 물을 때, 이제 답은 하나의 숫자가 아니라 올바른 단위를 고르는 지혜까지 포함합니다.
FAQ (자주 묻는 질문)
Q1. 왜 ‘광년’ 대신 ‘파섹’을 논문에서 더 자주 쓰나요?
A. 시차 관측과 바로 맞물려 계산이 단순하기 때문입니다. d(pc)=1/p()¨d(\mathrm{pc})=1/p(\")가 곧바로 성립해 오차전파·통계처리도 직관적입니다.
Q2. 1 pc = 3.26 ly는 정확한가요?
A. 변환상수는 정의에서 파생됩니다. IAU 2015 정의와 AU(2012) 고정값을 쓰면 1 pc ≈ 3.26156 ly로 환산되며, 더 많은 유효숫자가 가능합니다.
Q3. AU가 ‘평균 태양거리’가 아니라 ‘정확한 미터’라던데요?
A. 네. 2012년 IAU B2 결의로 AU는 정확히 149 597 870 700 m입니다. 더 이상 태양 물리량 추정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Q4. ‘광년’의 기원은?
A. 1838년 베셀의 항성시차 발표 직후, 1850년대 독일 대중천문서 등에서 **‘빛이 몇 년 가는가’**를 표현하기 위해 확산되었습니다. 초기엔 일부 과학자들이 명칭의 혼동을 이유로 꺼리기도 했습니다.
Q5. 가이아의 시차 정밀도는 어느 정도인가요?
A. 수십 마이크로초각까지 달합니다. 비유하면 1000 km 떨어진 머리카락 굵기를 재는 셈입니다. 이 정밀도가 파섹 체계의 실용성을 비약적으로 키웠습니다.
Q6. 장거리 우주론에서 ‘코Moving 거리(Mpc)’ 같은 건 또 뭔가요?
A. 허블팽창을 고려한 좌표적 거리로, 메가파섹(Mpc) 단위가 표준입니다. 단위는 파섹의 접두어 확장(1 Mpc = 10⁶ pc)이며, 우주론 매개변수 추정(예: H0H_0)에 핵심입니다.
부록: 변환 치트시트
- 1 AU = 149 597 870 700 m (정의)
- 1 pc = 648000/π648 000/\pi AU = 3.08567758×10¹⁶ m ≈ 3.26156 ly (정의 유도)
- 1 ly = c × 1 Julian year ≈ 9.4607×10¹⁵ m (보편 상수 기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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